
교사: 독도에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李대통령: (웃음) 독도는 내가 뭐… 그건 내가 이제 또 내가 한 2~3년 전부터 내가 여러 깊은… 이런 것들은 즉흥적으로 하는게 아니고 깊은 배려가 있어야 돼요. ‘이렇게 됐을 때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저렇게 됐을 때 저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큰 테두리에서. 일본이 세계 최고의 국가 아니겠어요? 사실 중국보다 더 좀 커졌다고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일본이 제2 강국이예요. 그건 뭐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하고 한참 차이가 납니다. 과학기술이라든가, 사회적 시스템이라든가 뭐 여러가지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근데 일본이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이 입장을 잘 이해를 못해요. 이 사람들이. 이걸 깨우치게 하려고 그래요 내가. 일본에 대해서 내가 깨우치게 하려고 하는데… (박수) 내가 모든 나라에 國賓(국빈)방문을 했지만 일본 國賓 방문은 안 가고 있습니다. 가기는 많이 가요. 셔틀외교를 해서 매일 가지만, 내국인 방문하면 국회에 가서 연설을 해야 할 때 내가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하면 간다고 이렇게 해 놓은 거예요.
그렇게 한국에 방문하고 싶으면, 저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신 거기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를 하면 좋겠다 이거예요. 와 가지고 또 한 몇 달 단어를 뭘 쓸까? ‘정념’의 뭐가 어쩌고, 이런 단어 찾아와 가지고 그 단어 하나 쓸려고 하면 올 필요 없다 이거예요. 내가 2년 전 일본가서 TV 방송국에서 100명의 젊은 학생들,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 100명이 생방송으로 질의·응답을 막하는 거예요. 마음대로 생방송을 하는 거예요. 상당히 위험한 거예요. 일본에서 하는 것은. 그때 한 젊은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그랬냐고 하면 ‘대통령께서는 미래지향적으로 가신다고 하고, 과거보다 미래를 향해서 나가야 된다. 과거는 다 잊어버리는거냐’고 이렇게 묻는 거예요. 내가 거기다 ‘잊기는 뭐 잊느냐’고 그러면 한국 사람들은 좋아하겠죠. 방송보면. 근데 국제 룰이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내가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 대답을 내가 여러분들한테 소개하려고 하는 거예요. ‘어느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답변을 해야 되는가’ 생각을 했는데 내가 이렇게 얘기 했어요. 내가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주먹 쓰는 애 하나가 있어서 날 아주 못 살게 굴었다 이거예요. 어쩔땐 걔 때문에 학교를 가고 싶지 않았다 이거예요. 그 정도로 그랬단 말이예요. 그 놈은 즐기고 있었다 이거예요. 막 쥐어박고. 그러다 보니까 초등학교 졸업하고 다 세상나오고 한 4~50년 지났다 이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모임에 그 친구가 왔어요. 근데 그 친구는 얼마나 반가워 했는지 몰라요. 내가 서울시장 때인데. 막 반갑다고 내 이름 부르면서 이러는데 난 보는 순간에 ‘저 새키 날 참 못살게 굴었던 놈’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딱 드는 거예요. 보는 순간에. 그 얘길 하는 거지. 여러 사람들한테.
여기 일본인이 날조하는 것처럼 천황을 무릎 꿇게 하느니 그런 발언은 이명박이 한 적이 없습니다.
이상한 괴담 퍼뜨리지 마세요.

教師: 独島にはよく行って来たんですか?
李大統領: (笑い) 独島は私が… 彼でも私がもうまた私が一 2‾3年前から私が多くの深い… こんなものなどは即興的にするのではなくて深い思いやりが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このようになった時こんな副作用があり得てああになった時あんな副作用があり得る’と言うが大きいわくで. 日本が世界最高の国家ではないですか? 実は中国よりもっとちょっと大きくなったと言うが内容的に見れば日本が第2 強国です. それは何言うまでもなく. 私たちしてずいぶん差があります. 科学技術とか, 社会的システムとか何いろいろ差が多いが… ところで日本が加害者と被害者に対するこの立場(入場)をよく理解ができません. この人々が. これを覚ますようにしようとそうです私が. 日本に対して私が覚ますようにしようと思うのに… (拍手) 私がすべての国に 国賓(国賓)訪問をしたが日本 国賓 訪問は行かないです. 行くことはたくさん行ってください. シャトル外交をして毎日行くが, 国内人訪問すれば国会に行って演説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時私が勝手にしたい話をするようにすれば行くとこのようにしておいたんです.
そのように韓国に訪問したければ, 私独立運動して帰ったそこ尋ねて心より謝れば良いだろうこれです. 来ていてまた一何月単語を何を書こうか? ‘情念’の何がどうして, こんな単語尋ねて来ていてその単語一つ使おうとすれば来る必要ないこれです. 私が 2年前日本行って TV 放送局で 100人の若い学生たち, 高等学校, 大学学生たち 100人が生放送で質疑・回答を幕するんです. わがまま生放送をするんです. よほど危ないんです. 日本ですることは. あの時一若い人が私に何と言ったかと言えば ‘大統領は未来指向的にいらっしゃると言って, 過去より未来に向けて出なければならない. 過去はすべてイッオボリヌンゴか’とこんなに問うんです. 私がそこだ ‘忘れることはなんか忘れるのか’とそれでは韓国の人々は好きです. 放送補なら. ところで国際ルールがそうではないでしょう. それで私がそのように返事をしました. その返事を私がみなさんに紹介しようと思うんです. ‘どの位の強盗を持って返事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 考えをしたが私がこんなに話しました. 私が実際あった話をしました. 私が小学校通う時拳使う子一人があって日とても住む事ができなくふるまったこれです. どうする時はその子のため学校に行きたくなかったこれです. それ位にそうだったというですね. その奴は楽しんでいたこれです. ちょうど突き殴って. そうして見るから小学校卒業してすべてセサングナオで言った 4‾50年経ったこれです. ところである日の集まりにその人が来ました. ところでその人はいくら嬉しがったのか分からないです. 私がソウル市場の時なのに. ちょうど嬉しいと私の名前呼びながらこういうのに私は見る瞬間に ‘私セキ日本当に住む事ができなくふるまったやつ’という考えが頭の中にぴったりかかるんです. 見る瞬間に. その話をするので. 多くの人々に.
ここに日本人が捏造することのように天皇をひざまずくようにするよりそんな発言は李明博のした事がないです.
変な怪談まき散らさないでくださ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