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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CLUB - <ヽ`д´>パンチョッパリがけしからんニダ!
ミリタリー


2017.1.12 15:40更新
【釜山・慰安婦像設置】
民団トップが撤去求める 「私たち在日同胞の切実な思い」

韓国・釜山の日本総領事館前の道路に設置された慰安婦像=2016年12月30日(名村隆寛撮影)
韓国・釜山の日本総領事館前の道路に設置された慰安婦像=2016年12月30日(名村隆寛撮影)


 在日本大韓民国民団(民団)は12日昼、都内のホテルで新年会を開き、呉公太(オ・ゴンテ)団長が韓国・釜山の総領事館前に設置された慰安婦像について「撤去すべきだというのが、私たち在日同胞の共通した切実な思いだ」と述べた。その上で「(韓国)国民の冷静かつ賢明な判断と、日本政府の冷静な対処を望む」とし、一昨年12月の慰安婦問題に関する日韓合意を堅持すべきだとの考えを示した。

http://www.sankei.com/world/news/170112/wor1701120044-n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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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7 05:04更新
【産経抄】
韓非子のいう国が滅ぶ兆候…韓国は大丈夫か 1月7日

韓国・釜山の日本総領事館前に設置された慰安婦像(名村隆寛撮影)
韓国・釜山の日本総領事館前に設置された慰安婦像(名村隆寛撮影)


 中国・戦国時代の法家思想の大成者、韓非子は国が滅ぶ兆候の一つに、こんな例を挙げる。「無礼な態度で隣の大国を侮り、貪欲のへそ曲がりで外交もまずいという場合」。国民感情が実定法に優越する「国民情緒法」が横行する韓国は、隣国日本は法治国家だということを忘れていたようである。

 ▼堪忍袋の緒が切れたということだろう。菅義偉官房長官は6日、韓国・釜山の日本総領事館前に昨年末、慰安婦を象徴する像が設置されたことに対し、慰安婦問題を最終的かつ不可逆的に解決する日韓合意と、国際法に照らして「極めて問題だ」と強調し、対抗措置を発表した。

 ▼駐韓日本大使と駐釜山総領事の一時帰国や、韓国側が求める通貨交換(スワップ)協定協議の中断など、弱腰といわれてきた日本外交としてはかなり強烈な中身である。新たな慰安婦像設置に、安倍晋三首相が激怒していたことも後押しとなった。

 ▼外務省幹部は「韓国側は『そこまでやるのか』と驚いていた」と語る。一方の韓国外務省は6日、「非常に遺憾だ」とコメントを出したが、像設置を事実上、黙認していたのだからそれをいう資格はない。自国民の情緒は偏重しても、日本人にも感情があるという当たり前のことは理解していなかったらしい。

 ▼米国のバイデン副大統領も早速、日韓合意を支持し、着実な履行を強く期待する旨を表明し、日本側に立つことを明らかにした。既に貪欲に10億円を受け取っている韓国は、外交的にも追い詰められた。

 ▼問題は、像設置の背景に、親北朝鮮勢力の暗躍が指摘されることだ。にもかかわらず、北が暴発しかねない今、像の撤去一つできない韓国は大丈夫なのか。韓非子のいう「亡徴(ぼうちょう)」を見るようで恐ろしい。

http://www.sankei.com/column/news/170107/clm1701070003-n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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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パンチョッパリはチョッパリに洗脳されているニダ。
このパンチョッパリの妄言に耳を貸してはいけないニダ。
チョッパリへの嫌がらせを止めるなんて言語道断ニダ。
<ヽ`д´>



朝鮮人なら朝鮮人らしく亡国の道をただひたすら真っ直ぐに突き進んでいただきたい。
大好きな売春婦像を崇め奉りながら。
そして民団はさっさと半島に帰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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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まけ)

2017.1.8 23:00更新
【「北朝鮮経済史」を読む】
創氏改名は「朝鮮が希望、日本は反対」 「左翼」が作った北朝鮮史は欺瞞に満ちていた…

朝鮮半島の近現代史を扱う書籍は多いが、データに基づく『北朝鮮経済史 1910-60』(下)は貴重な存在
朝鮮半島の近現代史を扱う書籍は多いが、データに基づく『北朝鮮経済史 1910-60』(下)は貴重な存在


 平成28年11月、知泉書館(東京都文京区)という学術専門出版社から『北朝鮮経済史 1910-60』が出版された。約150ページの書籍。日韓併合から敗戦による南北分断、朝鮮戦争(50~53年)、「千里馬(チョンリマ)運動」などにより社会主義国家・北朝鮮が大躍進を遂げたとされる時代の経済史だ。日本統治時代のデータと旧ソ連にあった北朝鮮の公式データなどを付き合わせることで、日本における北朝鮮をめぐる近現代研究が、いかに欺瞞に満ちていたかを指摘している。(文化部 村島有紀)

 初版わずか800部。著者の木村光彦・青山学院大教授は、ソ連の崩壊後、ロシア公文書館で公開された1946~65年の北朝鮮に関する資料を翻訳し、6年前に『旧ソ連の北朝鮮経済資料集』を出版した経済学者だ。編集担当の小山光夫さんは「北朝鮮の情報を資料に基づいた研究をしている人は日本では木村さんだけ。その木村さんが間違いがないとする範囲で初めて出版した通史」と出版意義を強調。裏表紙には《半世紀にわたる北朝鮮の経済史を膨大なデータを活用して考察し、はじめてその実相を明らかにした画期的な概説書》と喧伝する。

 本書の主なデータは、戦前は、朝鮮総督府の統計年報、戦後は北朝鮮や旧ソ連の経済資料などに依拠している。木村教授はもともと、アジアの開発経済が出発点。マクロとミクロ双方の視点から、データを基にコツコツと北朝鮮経済を研究するが、「本に書いたことがすべて」という。

 そこで、代わりに木村教授との共著『北朝鮮の軍事工業化』がある、元通産省技官で、日本統治時代の北朝鮮の産業遺産に詳しい安部桂司さん(77)=ペンネーム、安部南牛=に、『北朝鮮経済史-』とその時代背景について、解説してもらった。

 まず、1910~45年の日本統治時代と、1945~60年の北朝鮮経済を切り取り、分析する意義については、「北朝鮮の労働新聞(朝鮮労働党機関紙)には、日本統治時代の経済がいかにひどかったか、糾弾されている。そうではなく、実態はこうだったと伝えることが大事だから」と話す。

 木村教授は本書で、日本統治時代の朝鮮半島の北半分(咸鏡道=北鮮▽平安道、黄海道=西鮮)を「北部」に分類。1910年以前の自然や産業などの初期条件を述べた後、農業、鉱工業、初等教育、防疫についてそれぞれ半世紀の変化を分析する。

 例えば、農業の分野では「日本が朝鮮半島の物資を収奪したために住民が飢え、流民になった」などとされる。しかし、統計では、1920~30年代には米の作付面積が大きく増え、1人当たり生産量で南部を上回る地域もあった。一方で、雑穀などの生産量も減っていない。木村教授は本書で《全食糧作物の1人当り生産量は、1920年代から朝鮮北部が南部を上回った》と述べ、住民の消費量を1938年に限って輸出入を調整して推計すると、0・28トン(穀物のみ)。《この量なら飢餓は起こらない》と結論づける。

 朝鮮北部の米作発展を促進したのは、日本の東北地方から導入された寒冷地向けの品種だ。

 安部さんは「もともと北部で米は常食されていなかった。日本の水利事業が成功したことで米を生産できる土地が増え、平壌は日本一の日本酒の産地になった。日本酒を造った理由は満州への需要が大きかったのと、米の消費先として最も収益がいいから。物資を奪ったわけではなく、農民には当然代金が支払われた」と説明する。



 日本統治時代のできごとは、徴用(賃金を払っての動員)強制連行(奴隷労働)になり、資本主義に基づいた貿易が、「収奪」と言い換えられている。なぜ、このようなことが起きてきたのだろうか。

 「資本主義は悪で、社会主義が善という考えで歴史をみてきたからだ」と安部さん。また、第2次大戦の敗戦後、朝鮮研究を熱心に担ったのは朝鮮半島出身の在日の学者や、贖罪意識を持つ日本人研究者らの“左翼”で、帝国や総督府が発表した公式資料を「官の歴史として信用せず、一般人からの聞き書き、証言に資料価値を置いた」(安部さん)という。その結果、在日朝鮮・韓国人の間で語られた流言を含め、「飢餓輸出」「強制連行」「創氏改名の強制」「従軍慰安婦」などが“史実”として一人歩きを始めた可能性がある。

 「戦前、朝鮮半島から日本に来るとき多くの人が日本名を名乗った。そのほうが便利だからだ。戦後、米国に移民した多く朝鮮人が米国風に名前を変えたのと同じだ。ところが、日本名を名乗るのは恥辱になり『強制された』となった。『創氏改名』は朝鮮側からの希望であり、実際は治安上や従業員管理の問題により日本側からは反対が多かった」と安部さんは憤る。

     ◇

 一方、『北朝鮮経済史 1910-60』には、木村教授自身が長年、会費を払い続けた学会「朝鮮史研究会」(1959年発足、総連系)への“告発文”と読める文章が18ページに渡り「補章」として掲載されている。同会が極めて、北朝鮮寄りの政治性とマルクス・レーニン主義の歴史観を有し、実証的な歴史書編纂をしてこなかった過去と現在についての“告発”だ。

 例えば、同研究会が昭和49(1974)年に出版した『朝鮮の歴史』(三省堂)だ。同書は、古代から現代までを記した朝鮮半島通史でありながら、《反日イデオロギーと情緒的日本断罪論》に終始。日本統治下で朝鮮人の生活状態が悪化した証左とするデータに誤った数字を用いた上、日本=絶対悪として批判する。

 一方、同研究会の活動は、教育現場にも大きな影響を与えてきた。同じく朝鮮史研究会が編集した歴史書には、昭和61(1986)年に発行した『入門 朝鮮の歴史』がある。教職員向けのガイド本だが、1960年代初頭には、北朝鮮では農業生産力も順調な軌道にのり、北朝鮮内の自給が実現、米も安価に供給されているとある。

 木村教授の分析は違う。北朝鮮の戦後統計では、朝鮮戦争中も穀物の総作付面積が増大している点を疑問視。《戦闘で国土が破壊された一方、労働力・資材の不足が極限にたっした中で、作付増大が生じたのは不自然》と述べ、1945年に0・26トンだった1人当たり食糧生産量が、1957年に0・45トンに急増したという数値についても《政府が過大に作り上げたプロパガンダの一種》と結論づける。

 さらに『入門 朝鮮の歴史』にある「強制連行と徴兵」についての記述は以下の通りだ。

 《朝鮮各地から強制的に狩り集められた若い女性たちが遠くはビルマ戦線から中国大陸、南洋諸島などに送り込まれ、日本兵士を『慰安』する肉体提供者として利用された。日本軍と行動をともにした彼女たちは戦死、病死、自殺に追いこまれ、生きて帰った人はまれであったといわれる。その数は確認できないまま今日にいたっているが、十数万人にのぼったといわれている》

 今現在、韓国で信じられている“従軍慰安婦”の内容とほぼ同じ。強制の根拠となる事実や数字の裏付けがないまま一方的につづられている。

 朝鮮史研究会は、かつて日本の朝鮮史研究者をほぼ網羅し、現在も数百人の会員がいるとされる。隣国の理解のためには、まず、研究者による歴史の実証研究が求められている。



<ヽ`д´>판톳파리 벼랑 밖에들 응니다!


2017.1.12 15:40갱신
【부산・위안부상설치 】
민단 톱이 철거 요구한다 「우리 재일 동포의 절실한 생각 」

한국・부산의 일본 총영사관전의 도로에 설치된 위안부상=2016년 12월 30일(명촌탸카히로 촬영)
한국・부산의 일본 총영사관전의 도로에 설치된 위안부상=2016년 12월 30일(명촌탸카히로 촬영)


 재일본대한민국 민단(민단)은 12일 낮, 도내의 호텔에서 신년회를 열어, 오코타(오・곤테) 단장이 한국・부산의 총영사관전에 설치된 위안부상에 대해 「철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우리 재일 동포가 공통된 절실한 생각이다」라고 말했다.게다가로 「(한국) 국민의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과 일본 정부의 냉정한 대처를 바라는」로 해, 재작년 12월의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한 합의를 견지 해야 한다 라는 생각을 나타냈다.

http://www.sankei.com/world/news/170112/wor1701120044-n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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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7 05:04갱신
【산케이초】
한비자가 말하는 나라가 멸망하는 징조…한국은 괜찮은가 1월 7일

한국・부산의 일본 총영사관전에 설치된 위안부상(명촌탸카히로 촬영)
한국・부산의 일본 총영사관전에 설치된 위안부상(명촌탸카히로 촬영)


 중국・전국시대의 법가 사상의 대성자, 한비자는나라가 멸망하는 징조의 하나에, 이런 예를 든다.「무례한 태도로 근처의 대국을 경시해, 탐욕의 심술궂고 외교도 맛이 없다고 하는 경우」.국민 감정이 실정법으로 우월하는「국민 정서법」가 횡행하는 한국은, 이웃나라 일본은 법치국가라고 하는 것을 잊어 있던 것 듯한다.

 ▼참고 견디는 도량의 끈이 끊어졌다
라고 할 것이다.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6일, 한국・부산의 일본 총영사관전에 작년말, 위안부를 상징하는 상이 설치되었던 것에 대해,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는 일한 합의와 국제법에 비추어「지극히 문제다」라고 강조해, 대항 조치를 발표했다.

 ▼주한일본대사와 주부산 총영사의 일시 귀국이나, 한국측이 요구하는 통화 교환(스왑) 협정 협의의 중단 등,저자세라고 해 온 일본 외교(로서)는 상당히 강렬한 내용이다.새로운 위안부상설치에,아베 신조 수상이 격노하고 있던 것도 지지가 되었다.

 ▼외무성 간부는「한국측은 『거기까지 하는지』와 놀라고 있던」라고 말한다.한편의 한국 외무성은 6일, 「매우 유감스럽다」와 코멘트를 보냈지만,상설치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을 말하는 자격은 없다.자국민의 정서는 편중 해도,일본인에도 감정이 있다라고 하는 당연한 일은 이해하지 않았던 것같다.

 ▼미국의 바이덴 부통령도 조속히, 일한 합의를 지지해, 착실한 이행을 강하게 기대하는 취지를 표명해,일본 측에 설 것을 밝혔다.이미 탐욕에 10억엔을 받고 있는 한국은, 외교적으로도 추적할 수 있었다.

 ▼문제는, 상설치의 배경으로, 친북한 세력의 암약이 지적되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쪽이 폭발할 수도 있는 지금, 상의 철거 하나 할 수 없는 한국은 괜찮은가.한비자가 말하는 「망징(나비)」를 보는 것 같고 무섭다.

http://www.sankei.com/column/news/170107/clm1701070003-n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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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톳파리는 에게 세뇌되고 있는 니다.
이 판톳파리의 망언에 귀를 기울여 안 된다 니다.
에게의 짖궂음을 멈추다는 언어 도단 니다.
<ヽ`д´>



한국인이라면 한국인답게 망국의 길을 단지 열심히 곧게 돌진해 주셨으면 한다.
정말 좋아하는 매춘부상을 우러러봐 드리면서.
그리고 민단은 빨리 반도에 돌아가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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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2017.1.8 23:00갱신
【「북한 경제사」를 읽는 】
창씨개명은「조선이 희망, 일본은 반대 」 「좌익」가 만든 북한사는 기만으로 가득 차 있던 …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취급하는 서적은 많지만, 데이터에 근거하는『북한 경제사 1910-60』(아래)는 귀중한 존재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취급하는 서적은 많지만, 데이터에 근거하는『북한 경제사 1910-60』(아래)는 귀중한 존재


 헤세이 28년 11월, 지천서관(도쿄도 분쿄구)이라고 하는 학술 전문 출판사로부터『북한 경제사 1910-60』가 출판되었다.약 150 페이지의 서적.한일합방으로부터 패전에 의한 남북 분단, 한국 전쟁(50~53년), 「천리마 운동(정 리마) 운동」등에 의해 사회주의 국가・북한이 대약진을 이루었다고 여겨지는 시대의 경제사다.일본 통치 시대의 데이터와 구소련에 있던 북한의 공식 데이터등을 교제하게 하는 것으로, 일본에 있어서의 북한을 둘러싼 근현대 연구가, 얼마나 기만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지적하고 있다.(문화부 무라시마 유키)

 초판 불과 800부.저자 키무라 미츠히코・아오야마학원대교수는, 소련의 붕괴 후, 러시아 공문서관에서 공개된 1946~65년의 북한에 관한 자료를 번역해, 6년전에『구소련의 북한 경제 자료집』를 출판한 경제학자다.편집 담당의 코야마 미츠오씨는「북한의 정보를 자료에 근거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일본에서는 키무라씨다?`.그 키무라씨가 실수가 없다고 하는 범위에서 처음으로 출판한 통사」와 출판 의의를 강조.표리지에는《반세기에 걸치는 북한의 경제사를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고찰해, 처음 그 실상을 분명히 한 획기적인 개설서》와 훤전한다.

 본서의 주된 데이터는, 전쟁 전은, 조선 총독부의 통계 연보, 전후는 북한이나 구소련의 경제 자료 등에 의거 하고 있다.키무라 교수는 원래, 아시아의 개발 경제가 출발점.매크로와 미크로 쌍방의 시점으로부터, 데이터를 기본으로 부지런히북한 경제를 연구하지만, 「책에 썼던 것이 모두」라고 한다.

 거기서, 대신에 키무라 교수와의 공저『북한의 군사 공업화』가 있다, 원통산성 기관에서, 일본 통치 시대의 북한의 산업 유산을 잘 아는 아베 카츠라 츠카사씨(77)=펜 네임, 아베남소=에, 『북한 경제사-』와 그 시대 배경으로 대해서, 해설받았다.

 우선, 1910~45년의 일본 통치 시대와 1945~60년의 북한 경제를 잘라내, 분석하는 의의에 대해서는, 「북한의 노동 신문(조선노동당 기관지)에는, 일본 통치 시대의 경제가 얼마나 심했는지, 규탄되고 있는/`B 그렇지 않고, 실태는 이러했다고 전하는 것이 소중하기 때문에」라고 이야기한다.

 키무라 교수는 본서로, 일본 통치 시대의 한반도의 북반분 (함경도=북조선▽평안도, 황해도=서선)을「북부」에 분류.1910년 이전의 자연이나 산업등의 초기조건을 말한 후, 농업, 광공업, 초등교육, 방역에 대해 각각 반세기의 변화를 분석한다.

 예를 들면, 농업의 분야에서는 「일본이 한반도의 물자를 수탈 했기 때문에 주민이 굶어 유랑민이 된」 등으로 여겨진다.그러나, 통계에서는,1920~30년대에는 미의 작부 면적이 크게 증가해 1 인당 생산량으로 남부를 웃도는 지역도 있었다.한편,잡곡등의 생산량도 줄어 들지 않았다.키무라 교수는 본서로《전식량 작물의 1인당 생산량은, 1920년대부터 조선 북부가 남부를 웃돈 》라고 말해 주민의 소비량을 1938년에 한해서 수출입을 조정해 추계하면, 0・28톤(곡물만).《이 양이라면 기아는 일어나지 않는 》와 결론 짓는다.

 조선 북부의 미작 발전을 촉진한 것은, 일본의 동북지방으로부터 도입된 한랭지 전용의 품종이다.

 아베씨는 「원래 북부에서 미는 주식 되어 있지 않았다.일본의 수리 사업이 성공한 것으로 미를 생산할 수 있는 토지가 증가해 평양은 일본 제일의 일본술의 산지가 되었다.일본술을 만든 이유는 만주에의 수요가 컸던 것과 미의 소비처로서 가장 수익이 좋으니까.물자를 빼앗은 것이 아니고, 농민에게는 당연히 대금이 지불된」라고 설명한다.



 일본 통치 시대의 사건은,징용(임금을 지불한 동원)강제 연행(노예 노동)이 되어,자본주의에 근거한 무역이,「수탈 」라고 말해 바꿀 수 있고 있다.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자본주의는 악으로, 사회주의가 선이라고 할 생각으로 역사를 봐 왔기 때문이다」와 아베씨.또, 제2차 대전의 패전 후, 조선 연구를 열심히 담당한 것은 한반도 출신의 재일의 학자나, 속죄 의식을 가지는 일본인 연구자외의“좌익”로, 제국이나 총독부가 발표한 공식 자료를 「관의 역사로서 신용하지 않고,일반인으로부터의 기록, 증언에 자료 가치를 둔」(아베씨)라고 한다.그 결과, 재일 조선・한국인의 사이에 말해진 뜬소문을 포함해「기아 수출 」「강제 연행 」,「창씨개명의 강제」「종군위안부 」등이 “사실”로서 한 명 걷기를 시작한 가능성이 있다.

 「전쟁 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올 때 많은 사람이 일본명을 자칭했다.그 편이 편리하기 때문이다.전후, 미국에 이민한 많이 한국인이 미국풍으로 이름을 바꾼 것과 같다.그런데 , 일본명을 자칭하는 것은 치욕이 되어 『강제당한』되었다.『창씨개명』는 조선 측에서의 희망이며, 실제는 치안상이나 종업원 관리의 문제에 의해 일본측에게서는 반대가 많았다」와 아베씨는 분개한다.

     ◇

 한편, 『북한 경제사 1910-60』에는, 키무라 교수 자신이 오랜 세월 , 회비를 계속 지불한 학회「조선사 연구회」(1959년 발족, 조총련계)에의“고발문”라고 읽을 수 있는 문장이 18 페이지에 건너「보장」로서 게재되고 있다.동회가 지극히, 북한 가까이의 정치성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역사관을 가져, 실증적인 역사서 편찬을 해 오지 않았던 과거와 현재에 대한“고발”다.

 예를 들면, 동연구회가 쇼와 49(1974) 년에 출판한『조선의 역사』(산세이도)다.동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적은 한반도 통사면서, 《반일 이데올로기와 정서적 일본 단죄론》에 시종.일본 통치하에서 한국인의 생활상태가 악화된증거로 하는 데이터에 잘못된 숫자를 이용한 후,일본=절대악으로서 비판한다.

 한편, 동연구회의 활동은, 교육 현장에도 큰 영향을 주어 왔다.같은 조선사 연구회가 편집한 역사서에는, 쇼와 61(1986) 년에 발행한『입문 조선의 역사』가 있다.교직원 전용의 가이드책이지만,1960년대 초두에는, 북한에서는 농업 생산력도 순조로운 궤도에 올라, 북한내의 자급이 실현, 미도 염가로 공급되고 있는어떤.

 키무라 교수의 분석은 다르다.북한의 전후 통계에서는, 한국 전쟁중도 곡물의 총작부 면적이 증대하고 있는 점을 의문시.《전투로 국토가 파괴된 한편, 노동력・자재의 부족이 극한으로 달한 가운데, 작 부증대가 생긴 것은 부자연 》라고 말해 1945년에 0・26톤이었던 1 인당 식량 생산량이, 1957년에 0・45톤에 급증했다고 하는 수치에 대해서도《정부가 과대하게 만들어낸 선전의 일종 》와 결론 짓는다.

 한층 더『입문 조선의 역사』에 있는「강제 연행과 징병」에 대한 기술은 이하와 같다.

 《조선 각지로부터 강제적으로 사냥해 모아진 젊은 여성들이 멀지는 버마 전선으로부터 중국 대륙, 남양 제도 등에 이송되어 일본 병사를『위안』하는 육체 제공자로서 이용되었다.일본군과 행동을 함께 한 그녀들은 전사, 병사, 자살에 몰려 살아 돌아간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고 한다.그 수는 확인할 수 없는 채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수십 만명에 달했다고 하는 》

 지금 현재, 한국에서 믿을 수 있고 있는 “종군위안부”의 내용과 거의 같다.강제의 근거가 되는 사실이나 숫자의 증명이 없는일방적으로 씌여져 있다.

 조선사 연구회는, 일찌기 일본의 조선사 연구자를 거의 망라해, 현재도 수백명의 회원이 있다고 여겨진다.이웃나라의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연구자에 의한 역사의 실증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http://www.sankei.com/premium/news/170106/prm1701060004-n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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