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3년 3월 그녀는 교육을 마치고 여간수로 아우슈비츠에 파견된다
드디어 그녀는 잔혹하고 변태적인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승진을 거듭하였고,
그해 가을에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C캠프의 여간수 장에 임명된다.
그곳에서 해가 가기 전에 이미 3만 명에 이르는
유태인 여성 억류자들을 담당하는 최고위급 여간수가 되었다.
(이 당시 아우슈비츠의 여성 간수들 중에서 그녀의 서열이 2위였다.)
이르마는 억류자들에 대한 심한 채찍질과 발길질 등으로
가장 어린 여간수였음에도 가장 악명이 높았다.
그녀의 본성을 의심케하는 일화가 있었는데 어느 봄 날이었다.
유대인들을 실은 트럭이 수용소 안으로 줄 지어 들어 오고 있었는데
그때 그녀가 길 한가운데로 뛰어들며 차들을 멈춰 세웠다.
그곳엔 흙먼지를 뒤집어 쓴 그녀의 애완견이 있었다.
황급히 애완견을 껴안은 그녀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불쌍한 것, 하마터면 죽을뻔 했잖아”
또한 색녀色女였던 이르마는 남성 억류자들에 대한 가혹한 성적학대 외에도
다수의 ‘애인’을 두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죽음의 천사’
조셉 멩겔레 박사와 비르케나우(제2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 조셉 크레머도 있었다.
그녀는 수용소안의 유력한 장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녀의 변태적인 섹.스 행각은 자신의 승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고문, 살인, 섹.스 등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1945년 1월, 아우슈비츠가 소개되면서, 그녀는 레벤스브룩 수용소에 잠시 있다가,
몇 달 후,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일하게 되며 여기서 최고의 악명을 떨치게 된다.
바로 이곳에서 그녀는 1945년 3월까지 노동서비스국 국장직을 수행했고,
4월 17일에 다른 친위대 간부들과 함께 영국군에게 체포되었다.
1945년 12월 13일. 이르마는 영국 당국에 의해 교수형을 당했다.
사형이 집행되던 순간 그녀의 마지막 말은 “빨리 끝내줘요!”였다고 한다.
ilsa .. ナチ親衛隊のセックニョ



1943年 3月彼女は 教育を終えてなかなか数でアウシュビッツに派遣される
いよいよ彼女は 残酷で変態的な性格を遺憾無く発揮して昇進を繰り返えしたし,
その年秋に アウシュビッツ第2収容所 Cキャンプのなかなか数章に任命される.
その所から日がたつ前にもう 3万人に至る
ユダヤ人女性抑留者たちを担当する最高位級なかなか数になった.
(この当時アウシュビッツの女性看守たちの中で彼女の序列が 2位だった.)
イルマは抑留者たちに対するひどいむち打ちと足蹴などで
一番幼いなかなか数だったにも一番悪名が高かった.
彼女の本性を疑うようにするエピソードがあったがどの春の日だった.
ユダヤ人たちを積んだトラックが収容所中に列をなして入って来ていたが
あの時彼女が 道の真ん中で跳びこんで車を止めて立てた.
その所には土ぼこりを被った彼女の愛玩犬が あった.
慌てて愛玩犬を抱えこんだ 彼女は労しい表情でこんなに言った.
可哀相なの, ひょっとすれば死ぬところだったんじゃないの
もセックニョ色女だったイルマは男性抑留者たちに対する苛酷な性的虐待 外にも
多数の ‘恋人’を置いたりしたが, その中には ‘死の天使’
ジョセフメングゲルレ博士とビルケナウ(第2 アウシュビッツ) 収容所の
所長ジョセフクレーマもあった.
彼女は収容小安の有力な将校たちと浮名を流して通った.
彼女の変態的なセックス.ス行為は自分の昇進に大きい影響を与えた.
彼女は自分の快楽のために顧問, 殺人, セックス.スなどを全然隠さなかった.
1945年 1月, アウシュビッツが紹介されながら, 彼女はレベンスブルック収容所にしばらくある途中,
何月後, ベルゲン-ベルゼン収容所で働くようになりながらここで最高の悪名をふるうようになる.
すぐこちらで彼女は 1945年 3月まで労動サービス国局長職を遂行したし,
4月 17日に他の親衛隊幹部たちと一緒にイギリス軍に逮捕した.
1945年 12月 13日. イルマはイギリス政府によって絞首刑にあった.
死刑が執行された瞬間彼女の最後の言葉は “早く終えてください!”だったと言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