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헌에도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니라는 증거가 다수 등장한다. 주요 문헌으로는 오야 가문(大谷家)의 문서에서 보이는 “죽도(울릉도)근변의 송도(독도)(竹島近邊松嶋)”(1659년) “죽도내의송도 (竹嶋內松嶋)”(1660년) 등의 기록이 설명해주는 바와 같이 예로부터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屬島)”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17세기 중엽 일본고문헌인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紀)』(1667년)에는 “일본의 서북쪽 한계를 오키섬으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 일본이 울릉도·독도를 자국의 영토에서 제외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독도가 일본영토에서 제외된 일본 지도를 비롯하여 심지어는 하야시 시헤이(林子平)의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 1785)의 독도가 한국의 것 “朝鮮の持”(조선의 소유)지도에 이르기까지 관찬문헌 등이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19세기말 20세기 초, 한일 양국문헌의 독도 관련 내용은 주로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日本文献にも独島が日本領土ではないという証拠が多数登場する. 主要文献には来ると家門(大谷家)の文書で見える “竹刀(鬱陵島)近辺の松都(独島)(竹島近辺松嶋)”(1659年) “竹刀内衣松都 (竹嶋内松嶋)”(1660年) などの記録が説明してくれるところのように昔から “独島は鬱陵島の付属島嶼(属島)”で見なされた. そして 17世紀中葉日本古文献である 『ウンズシチォングハブギ(隠州視聴合紀)』(1667年)には “日本の西北の方限界をOki島にする”と記録されていて当時日本が鬱陵島・独島を自国の領土から除いていたことを分かる. この外にも独島が日本領土から除かれた日本 指導を含めてはなはだしくは Hayashi 時ヘイ(林子平)の三国通覧図説(三国通覧図説, 1785)の独島が韓国の物 “朝鮮の持”(朝鮮の 所有)地図に至るまで官撰文献などが多数存在する. そして 19世紀末 20世紀初め, 韓日両国文献の独島関連内容は主に独島が日本と関係ないという内容が主であ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