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 중국 황제에게 고구려의 방해로 사신을 못보내니까 고구려좀 쓸어달라고 부탁하는 상표문을 보낸적도 있다
광개토왕대에 만주와 한반도의 여러 경쟁세력들을 극복한 것으로 인해 고구려는 중원의 패자 북위,몽골의 패자 유연과 함께 요동지역의 패자로 등극한다. 이는 최초로 만주를 하나로 통일한 정권이 등장하는 계기였다. 이전까지는 항상 비슷한 세력들로 분열되어 있었으나 광개토왕 이후로 만주에는 고구려말고는 북만주의 좁쌀만한 부족국가들만 남게된다. 나중에 거란이나 물길,돌궐이 등장하여 만주의 주권을 위협하지만 고구려는 이를 어찌저찌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통일보다는 배타적 패권을 휘두르는 국가가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신라는 물론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남부마저도 고구려의 통제권에 놓여 백제나 왜[39]가 중국에 사신을 맘대로 못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사군이 동이지역을 통제하던 것을 고구려가 바톤터치했다는 견해도 있다
なぜが中国皇帝に高句麗の邪魔で使臣が送る事ができないから高句麗ちょっと掃いてくれと言って頼むサングピョムンを送ったこともある
光ヶ土用台に満洲と韓半島の多くの競争勢力たちを乗り越えたことによって高句麗は中原の敗者北緯,モンゴルの敗者柔軟とともに搖れ地域の敗者に上がる. これは最初で満洲を一つで統一した政権が登場するきっかけだった. 以前まではいつも似ている勢力たちに分裂されていたが光ヶ土用以後で満洲には高句麗を除いては北満州のゾブサルほどの部族国家たちだけ残るようになる. 後でキタイや水路,突厥が登場して満洲の主権を脅威するが高句麗はこれをオチゾチ乗り越えたように見える. もうちょっと正確に言わば統一よりは排他的覇権を振り回す国家が登場したと思うことが正しい. 新羅はもちろん百済を含めた韓半島の南部さえ高句麗の統制権に置かれて百済や倭[39]が中国に使臣を勝手に送る事ができない具合に至った. 漢四郡が東夷地域を統制したことを高句麗がバトンタッチしたという見解もあ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