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야마현의 구명은 「키이의 나라」니다<□`∀′>
의미는 그대로 「나무의 나라」니다.와카야마변은 「손」 「눈」와 같이 한 음의 단어의 자음을 늘리는 특징이 있다의로, 「나무의 나라」에 그대로 한자를 대어 「키이의 나라」가 된 니다 <□`∀′>덧붙여서 발음은 Kiii
라는 느낌 니다.
덧붙여서, 키이를 그대로 씨로 하는 「기씨」는, 와카야마시의 히쿠마궁의 제주로서 곧 그 혈맥을 전하고 있는 니다.
덧붙여서 「쿠마노」는, 와카야마 전체가 아니고, 타나베시 이남을 가리키는 호칭 니다.타나베시에는 「사카이마치」라고 하는 지명이 있고, 이것이 쿠마노와 그 이외의 경계가 되고 있는 니다.
「쿠마노(KUMANO)」는 원래 이세의 안쪽 근처의 지명으로, 서기 560년즈음에 모루(MURO)의 나라에 편입되었다고 하는.덧붙여서 「모루(MURO)」는 「실(MURO)」의 의미로, 쿠마노는 「외야(KUMANO=구석의 토지)」.즉 어느쪽이나 「터무니 없는 벽지」라고 하는 의미 니다 <□`∀′>
카미타케 동정으로, 「정면에서 가서 고물 져 했으므로 쿠마노로부터 상륙해 고전의 뒤다이와 분지에 쳐들어가고, 최종적으로는 겨우 승리를 거두었다」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 아시는 바라고 생각하는 니다.
덧붙여서 전국시대는, 키이의 나라 전체에 군소의 지방 세력이 할거 하고, 결국 전국 다이묘는 나오지 않는 채 에도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니다.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대부분 스즈키가가 지배하고 있지만, 저것은 겐나노래 야마이치에 거주하고 있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스즈키가 단체로의 동원 능력은 겨우 수십명, 좋은 곳백명 정도 니다.
두서 없고 와카야마 자랑을 열거했지만, 양식 차이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지 않는 니다<□`∀′>
국도 42호선과 고목나다
和歌山県の旧名は『紀伊の国』ニダ<ヽ`∀´>
意味はそのまま『木の国』ニダ。和歌山弁は『手ェ』『目ェ』の様に一音の単語の子音を伸ばす特徴があるので、『木ィの国』にそのまま漢字をあてて『紀伊の国』となったニダ <ヽ`∀´>ちなみに発音はKiii
って感じニダ。
ちなみに、紀伊をそのまま氏とする『紀氏』は、和歌山市の日前宮の神主として今にその血脈を伝えているニダ。
ちなみに『熊野』は、和歌山全体ではなく、田辺市以南を指す呼称ニダ。田辺市には『境町』という地名があって、これが熊野とそれ以外の境となっているニダ。
『熊野(KUMANO)』はもともと伊勢の奥あたりの地名で、西暦560年ごろに牟婁(MURO)の国に編入されたそうな。ちなみに『牟婁(MURO)』は『室(MURO)』の意味で、熊野は『隈野(KUMANO=隅の土地)』。つまりどちらも『とんでもない僻地』という意味ニダ <ヽ`∀´>
神武東征で、『正面から行ってボロ負けしたので熊野から上陸して苦戦の後大和盆地に攻め入って、最終的には辛くも勝利を収めた』というのは皆さんご存知だと思うニダ。
神武東征が史実かどうかは置いておいて、負けに負けて、やむなく紀伊半島半周して、裏口から侵入した、というのに苦労がしのばれるニダ<ヽ`∀´>あと和歌山は神話時代からどうしようもない田舎だったという事が分かるニダ<ヽ`∀´>
ちなみに戦国時代は、紀伊の国全体に群小の地方勢力が割拠して、結局戦国大名は出ないまま江戸時代を迎えているニダ。
信長の野望ではたいてい鈴木家が支配しているけど、あれは現和歌山市に居住していた国人の一人で、鈴木家単体での動員能力はせいぜい数十人、いいとこ百人程度ニダ。
とりとめなく和歌山自慢を列挙したけど、カテ違いについては反省していないニダ<ヽ`∀´>
国道42号線と枯木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