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5년의 경우에도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은 8명이었던 반면 늑대가 물어 죽인 사람은 그 숫자가 무려 113명이나 되었다. 더구나 늑대는 주로 인가 주변에 어슬렁거리다가 갓난아기나 어린아이를 냉큼 물어가는 일이 잦았던 만큼 그 죄질 역시 호랑이에 비해 훨씬 더 나빴던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기사에는 “이위우(李渭雨)라는 포수가 1921년 9월에 잡았던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이 역시 사실과는 좀 다르다.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나 포획과정에 대한 설명에 비추어보건대, 그건 그 이듬해 10월2일에 구정주재소(九政駐在所)의 미야케 요조(三宅與三)라는 순사가 사살했다는 호랑이가 확실하므로 우선은 그 시기부터 “1922년”의 일로 바로잡는 것이 좋겠다.
위의 사진을 말하는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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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 년 전남 불갑산 에서 포획한 호랑이의 가죽을 들여다 보는 일본 상인 하라구치 쇼지로와 가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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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인 호랑이 사냥꾼과 조선의 사냥꾼이 함께 잡은 호랑이 ..-_-

1915年の場合にも虎にムルリョズックは人は 8人だった一方オオカミがかんで殺した人はその数字がおおよそ 113名もなった. その上にオオカミは主に人家周辺にぶらついている途中赤ん坊や子供をすぐにムルオがは仕事がひんぱんだった位その罪質も虎に比べてずっと悪かったのではないかも知れない.
その時代の記事にはイウィウ(李渭雨)という砲手が 1921年 9月に取ったことだと紹介しているがこれまた事実とはちょっと違う. そこに登場する人物たちの面々や捕獲過程に対する説明に照らして見るが, それはその翌年 10月2日に旧正月駐在所(九政駐在所)の未ヤッケ窈窕(三宅与三)という巡使が射殺したという虎が確かなのでまずはその時期から ¥"1922年¥"の事で直した方が良いろう.
上の写真を言う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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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 年全南 仏甲山で 捕獲した 虎の皮をのぞき見る 日本商人 原口しょうじ路と 家族た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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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本人虎狩人と朝鮮の狩人が一緒に取った虎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