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とくがわいえやす)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세상을 뜬 지 2년 후, 미노(美濃·지금의 岐阜縣(ぎふけん))의 세키가하라(關ヶ原)에서 큰 전투가 있었는데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히데요시(秀吉)의 충신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의 싸움이었다. 이 전투의 직접적인 빌미가 된 것은 이에야스(家康)가 여섯째아들의 혼례를 오슈(奧州)의 다이묘인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딸과 치르기로 약속했는데, 히데요시가 생전에 다이묘끼리의 혼인이나 결속을 철저히 막았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며 이에야스의 행동거지로 봤을 때 히데요시가 세운 천하가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결코 싸움을 먼저 걸지는 않았다. 이시다가 싸움을 걸어올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에야스 편에 선 다이묘들에게는 「이는 결코 히데요시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얄미운 이시다를 치는 것」이라는 대의명분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세키가하라(關ヶ原) 전투의 승리로 천하를 손에 넣게 된 이에야스는 도쿠가와의 힘과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전국 다이묘들 관리를 한층 철저히 했는데, 改易(かいえき·영지를 회수하는 것)와 轉封(てんぽう·영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는 것) 등의 조치를 취해 다이묘와 기반 세력간의 유대를 약화시키는 일에 주력했다.
또한 德川씨 일문에서 새로이 탄생된 親藩(しんぱん)의 수를 늘려 德川씨의 세력을 크게 확장시키는 것을 비롯해 금광, 은광 등의 광산을 모두 점령하여 놀라운 부를 축적하기에 이르렀다. 상대적으로 다른 다이묘들에게는 「參勤交代(さんきんこうたい)」 같은 제도로 축성(築城)과 공사(工事) 비용을 부담케 하는 등 다이묘들의 세력을 무력(武力)과 부력(富力) 양면으로 약화시켰다.
이에야스의 마지막 과제로 남아 있던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豊臣秀賴)와 그의 어머니 요도키미(淀君)를 치기 위해 이에야스가 취한 오사카성 침공계략은 이에야스가 얼마나 상당한 전략가였는가를 짐작케 하는 좋은 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에야스가 70세가 되면서부터 「日課念佛(にっかねんぶつ)」를 시작했다고 하는 것인데, 생전에 겪은 많은 전투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죄를 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사카성이 불탄 이듬해인 1616년 세상을 뜨기 이틀 전, 미이케 히로노리(三池典太)가 만든 명검(名劍)을 베게 밑에 두고 「내 죽어서까지 이 검으로 오래오래 자손들을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とくがわいえやす)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세상을 뜬 지 2년 후, 미노(美濃·지금의 岐阜縣(ぎふけん))의 세키가하라(關ヶ原)에서 큰 전투가 있었는데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히데요시(秀吉)의 충신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의 싸움이었다. 이 전투의 직접적인 빌미가 된 것은 이에야스(家康)가 여섯째아들의 혼례를 오슈(奧州)의 다이묘인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딸과 치르기로 약속했는데, 히데요시가 생전에 다이묘끼리의 혼인이나 결속을 철저히 막았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며 이에야스의 행동거지로 봤을 때 히데요시가 세운 천하가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결코 싸움을 먼저 걸지는 않았다. 이시다가 싸움을 걸어올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에야스 편에 선 다이묘들에게는 「이는 결코 히데요시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얄미운 이시다를 치는 것」이라는 대의명분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세키가하라(關ヶ原) 전투의 승리로 천하를 손에 넣게 된 이에야스는 도쿠가와의 힘과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전국 다이묘들 관리를 한층 철저히 했는데, 改易(かいえき·영지를 회수하는 것)와 轉封(てんぽう·영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는 것) 등의 조치를 취해 다이묘와 기반 세력간의 유대를 약화시키는 일에 주력했다. 또한 德川씨 일문에서 새로이 탄생된 親藩(しんぱん)의 수를 늘려 德川씨의 세력을 크게 확장시키는 것을 비롯해 금광, 은광 등의 광산을 모두 점령하여 놀라운 부를 축적하기에 이르렀다. 상대적으로 다른 다이묘들에게는 「參勤交代(さんきんこうたい)」 같은 제도로 축성(築城)과 공사(工事) 비용을 부담케 하는 등 다이묘들의 세력을 무력(武力)과 부력(富力) 양면으로 약화시켰다. 이에야스의 마지막 과제로 남아 있던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豊臣秀賴)와 그의 어머니 요도키미(淀君)를 치기 위해 이에야스가 취한 오사카성 침공계략은 이에야스가 얼마나 상당한 전략가였는가를 짐작케 하는 좋은 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에야스가 70세가 되면서부터 「日課念佛(にっかねんぶつ)」를 시작했다고 하는 것인데, 생전에 겪은 많은 전투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죄를 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사카성이 불탄 이듬해인 1616년 세상을 뜨기 이틀 전, 미이케 히로노리(三池典太)가 만든 명검(名劍)을 베게 밑에 두고 「내 죽어서까지 이 검으로 오래오래 자손들을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