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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치유의 시간이자 만남의 공간이다. 배우 고현정에게도 그랬다. 우연한 기회에 떠나게 된 일본 오키나와 여행은 그녀가 새로이 자신을 찾는 계기가 됐다. 곳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을 통해 다시 사랑할 힘도 얻었다. 그녀가 마주한 풍경, 사람, 기억에 관한 기록을 공개한다.
다 없어져버리다
오키나와 본섬 나하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야에야마 제도. 그중에서도 가장 오키나와다운 곳이라 할 수 있는 다케토미에 도착했다. 저 멀리 바다와 겹치는 하늘을 바라보자니 진짜 낯선 나라에 온 것 같다.
사실 여기 이렇게 서 있기까지 근래 몇 년간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굳이 세상을 피하려 한 은둔은 아니었으나 방송 이외에는 집 밖으로 선을 넘지 않는 칩거는 분명했다. 안으로 파고드는 나를 보면서 주위 사람들이 무척 힘들어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었다. 밖에서는 안 좋은 소문도 돈다고 하는데, 100%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여행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회사 관계자로부터 「새로운 오키나와 여행」이란 책을 건네받고는 마음이 근질근질해지는 걸 보며 곧 길을 떠나겠다 싶었을 뿐이다.
해변의 여인
잘 왔다는 듯 어루만져주는 엄마의 손길처럼 바람을 느끼니 갑자기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진다. 마침 두르고 있는 스카프 한 장. 양끝을 잡아 바람결에 날리는 큰 날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스카프에 몸을 싣고 바다를 향해 내달린다. 바람과 왈츠 한 판! 그냥 맡겨보는 거다.
풍경과 사람 중에 좋은 것을 꼽으라 하면 난 사람이 있어 풍경이 좋아진다고 말하겠다. 누구랑 얘기하고 누구와 웃었는지, 그런 기억을 떠올릴 때 그 풍경이 함께 떠오르는 걸 보면 난 사람 쪽이다. 이제 곤도이 해변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더 좋아질 것 같다. 사람들과 함께 스카프를 날렸던 즐거운 기억 때문에. 이제 곤도이엔 바람이 없다. 내가 다 담아간다.
결핍은 좀 필요하다
신비로운 전설은 실제의 공간과 어우러져 내가 마치 신비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생생한 느낌을 갖게 한다. 류큐 왕국을 건국했다는 신이 내려와 머무른 신화 속 장소 중에서도 가장 신성하다고 받들어지는 곳이 세화우타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완벽한 풍경을 보여준다. 세차게 몰아치는 파도는 이 거대하고도 고독한 바위에 무엇을 그리도 처절히 알리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몸을 아낌없이 던지고 있을까.
사춘기 반항심으로 나갔던 미스코리아 대회도 그리고 배우도, 결혼생활도 처음엔 불완전하게 시작했던 일들이 결국 큰 반전 드라마로 끝났다. 조용히 수면 밑에서 지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또다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이것은 운명인가, 의지인가. 나에게 물어본다. 생각해보면 결핍은 운명이었으나 그 결핍을 드라마로 만든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을까.
한 발 한 발 그렇게 몇 분이나 걸었을까. 마침내 가로로 거대한 바위 두 개가 서로를 지지하며 만들어낸 삼각형 모양의 공간에 닿았다. 조용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꺼내본다. 건강하기를, 맑기를, 미움을 담아두지 않기를, 인생의 어디가에선가 마주칠 때 서로를 기쁘게 안을 수 있기를. 그리고 비록 지금 나는 결핍돼 있지만 여느 때처럼 위기에 강한 나이기에 에너지를 모으기를. 이 에너지가 좋은 기운을 만나 내 인생에 또 한 번의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낼 것이라 믿으며….
섣부른 판단 금지
오키나와 북부 오기미 촌의 한적한 마을 산 중턱을 따라 오르면 햇살 좋은 터에 가마가 있고 그 옆에 자그마한 공방과 살림집이 있다. 이 아담한 공방에서 다무라 마사토시씨와 마이코씨 부부가 도자기를 제작한다. 이들은 일정한 틀이 없이 오키나와의 흙을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 야치문이라 불리는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그때그때 손의 느낌과 마음의 감성에 충실하게 빚다 보니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 야치문의 강인해 보이는 외양에 오키나와 자연을 닮은 빛이 좋아 인생을 결정하게 됐다는 이들의 말처럼 색이 담담한 것이 부족함이나 과장 없이 아주 편안하게 들어가 있다.
햇살이 비춘다. 따뜻하다. 흙이라는 것이 원래 따뜻해서 그걸 만지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하는 힘이 있는 건가? 산 중턱의 집에서 흙을 빚을 수 있음에 날마다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다 안다. 그럼에도 그럴 수 있는 건 이들이 심지가 굳고 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진짜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고 게으르지 않으며 생각만 하지 않고 움직인다. 서로를 향해 해맑게 웃고 서로의 뒤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빛나는 영혼들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 사람들이 실제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조금씩 나다운 방식으로 뭔가를 계속해도 된다는 격려를 받는다. 진짜들은 어렵지 않다. 되다 만 사람들이 오히려 어쭙잖게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 까다롭게 구는 법이다.
테이블만큼의 거리가 필요한 관계
여행을 다니면 하루 세 끼를 잘 챙겨 먹게 돼 좋다. 누가 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배꼽시계가 하자는 대로 따를 뿐인데 걷고,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꽤 노동이 된다는 증거다. 점심 먹을 곳을 찾다 동네의 언덕을 올랐다. “플라우만스 런치 베이커리 영업 중”이라고 쓰인 작은 팻말이 보인다. 지나칠 테면 그냥 지나쳐보라는 자신감인가?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려도 멋져 보이는 도도한 남자의 윙크 같다.

대문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니 널찍한 앞마당에 자연스럽게 자란 풀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 흡사 낙원인가 싶다. 여기가 오키나와인지, 유럽의 어느 시골집인지 헷갈린다. 마당에는 나뭇결이 살아 있는 큰 원형 테이블이 주인처럼 서 있다. 벽면으로 그림처럼 담쟁이가 타고 올라간 단층집이 아기자기하다. 입구에 진열된 갓 구워낸 빵맛도 일품이다. 씁쓸하고 약간은 탄 내음이 나는데 오히려 입맛이 도는 데 도움을 준다. 투박하게 구워낸 것 같으면서도 안은 보드랍고 씹히는 맛이 있다. 파티셰 하라다 미치노리씨는 “드시는 분들이 마음 편해지고 힐링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반죽하고 구워냅니다. 바쁘다고 빨리, 일이 밀려 있다고 대충 휘젓거나 반죽하지 않게 되죠. 제 감정을 천천히 다스리면서 해요. 제가 아프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빵 맛에 티가 나거든요”라고 말했다.
내가 좋으면 같이 좋고, 내가 싫으면 같이 싫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물을 대하는 일이라 부럽다. 애초에 내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사람과 엮이는 일은 나의 페이스나 마음가짐이 어느새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게 돼버린다. 나는 돌려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거쳐 이야기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내 앞에 의도치 않게 많은 가면들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늘 가면을 없애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는 건 불편한데다 다시 컴백하면서 어떤 경우에라도 정정당당하게 살자고 스스로 다짐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그 자리에 예쁘게만 있어”라고 해놓고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억울했다. 생각하지 말래서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알겠다니. 그리고 또 어떤 날은 나를 불러다놓고 진짜 속생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무 생각이 없다고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믿지 않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아무리 가까워도 밥을 먹는 테이블만큼의 거리가 있으면 좋겠다. 마음을 열고 친하게 지낸다고 모든 행동이 다 용인되는 것은 아니며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길이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 여행의 끝. 꼭 연인을 두고 다시 긴 여행을 떠나야 하는 기분이 든다.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 정도까지 이곳이 좋아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쩌지, 아쉬워서. 아직 못 만난 사람이 더 많다. 어느 공터의 포장마차 아주머니부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은 천과 끈, 엽서 등 여행의 추억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작가까지. 길과 길이 겹치지 못하고 아쉽게 비껴갔다.
그러나 우리의 길은 어디서 또다시 겹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 길에서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불안과 고민을 하고 안정을 꿈꾸며 살아간다. 불안하다고 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거나 같은 자리만 뱅뱅 돌고 있다면 불안의 불씨를 끄지 못하고 안식을 점화하지도 못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주 느리더라도 분연히 일어나 발을 떼야 한다. 그 길은 얼기설기 섞여서 때로는 만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내 뒷모습을 보이고 서로를 지나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지나간 발자국을 누군가 똑같이 지나다 볼 것이고 나도 누군가 남겨놓은 꽃을 만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속도와 방식, 방향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어느 지점에서는 또 마주치기도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단 하나의 종착점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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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行は治癒の時間と同時に出会いの空間だ. 俳優コ・ヒョンジョンにもそうだった. 偶然な機会に去るようになった日本沖繩旅行は彼女が新たに自分を尋ねるきっかけになった. あちこちで会った良い人々を通じて再び愛する力も得た. 彼女が向い合った風景, 人, 記憶に関する記録を公開する.
だ消えてしまう
沖繩本島那覇から飛行機で 1時間位離れているヤエヤマ制も. その中でも一番沖繩らしい所と言えるダケトミに到着した. あの遠く海と重なる空を眺めようとすると本当の不慣れな国へ来たようだ.
実はこここんなに立っているまで近来何年間彷徨ではない彷徨をした. 敢えて世の中を避けようと思った隠遁ではなかったが放送以外には家外で線を超えない耶居は明らかだった. 中に掘り下げる私を見ながら周り人々がすごく苦しがるのを分かるようになったことは最近の仕事だった. 外では良くないうわさも流れると言うのに, 100% 内過ちという気がした. うわさの原因を提供していることは事実だから.
しかしその時までにしても旅行までは考えができなかった. 会社関係者から 「新しい沖繩旅行」と言う(のは)本を渡してもらってからは心がむずむずされることを見てすぐ旅に出ると思っただけだ.
浜辺の女人
よく来たというように撫でてくれるママの手助けのように望むことを感じたら急に甘えを使いたくなる. ちょうどかけているスカーフ一枚. 両端を取ってバラムギョルに飛ばす大きい羽を作った. そしてスカーフに乗って海に向けて走る. 望むこととワルツ一版! そのまま任せて見るのだ.
風景と人の中に良いことを指折りなさいと言えば私は人がいて風景が好きになると言う. 誰と話して誰と笑ったのか, そんな記憶を思い浮かぶ時その風景が一緒に浮び上がるのを見れば私は人の方だ. もうゴンドイ浜辺を思い浮かぶ度に気持ちがもっとよくなるようだ. 人々と一緒にスカーフを飛ばした楽しい記憶のため. これからゴンドイには望むことがない. 私がすべてダムアガンダ.
欠乏はちょっと必要だ
神秘な伝説は実際の空間と調和して私がまるで神秘な話の主人公でもなったような鮮やかな感じを持つようにする. 琉球王国を建国したという神さまが下ってとどまった神話の中場所の中でも一番神聖だと奉ざれる所が細画優唾棄. やっぱり期待を忘れないで完璧な風景を見せてくれる. 激しく押し寄せる波はこの巨大で孤独な岩に何をあまりも悽絶に知らせるのだろう. 何のために身を借しまず投げているか.
思春期反抗心で出たミスコリア大会もそして俳優も, 結婚生活も初めには不完全に始めたことが結局大きい反転ドラマで終わった. 静かに睡眠下で過ごすこともできたが私は再び俳優の道に立ち入った. これは運命か, 意志か. 私に聞いて見る. 考えて見れば欠乏は運命だったがその欠乏をドラマで作ったことは私の意志ではなかっただろうか.
一歩一歩そのように何人やかけただろうか. 遂に横で巨大な岩二つがお互いを支持しながら作り出した三角形模様の空間に着いた. 静かに腹中に収めておいた言葉を出してみる. 元気を, 清いのを, 憎さを盛っておかないのを, 人生のオデ−がエソンがでくわす時お互いを嬉しく抱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 そしてたとえ今私は欠乏されているがいつものように危機に強い私だからエネルギーを集めるように. このエネルギーが良い機運に会い出して人生にもう一度の良いドラマを作り出すはずと信じて….
不器用な判断禁止
沖繩北部呉気味寸意ものしずかな村住んだ中腹に付いて上がれば日ざし良いところにお御輿があってその横にやや小さい攻防と生活の家がある. この優雅で淡白な攻防でタムラMasatoshiさんとマイコシ夫婦が陶磁器を製作する. これらは決まったフレームがなしに沖繩の土を一つ一つ手でもたらしてヤチムンと呼ばれる陶磁器を作っている. その時その時手の感じと心の感性に充実にもたらして見たら一つも同じな模様がない. ヤチムンの強靭に見える形振りに沖繩自然に似ている光が良くて人生を決め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これらの言葉のように色が平気なのがブゾックハムや課長なしにとても楽に入っている.
日ざしが照らす. あたたかい. 土というのが元々暖かくてそれを触る人の心までも暖かくする力があることか? 山中腹の家で土をもたらすことができるに日々に感謝しながら暮すというのが, 易しいようだが本当に難しい事というのを私たちすべて分かる. それでもそんなことができることはこれらが植え固くて善良な人々だからだ. 本当たちは精神をきちんとつけているし怠けではなくて考えばかりしないで動く. お互いに向けて白くて清く笑ってお互いの後に立つのをためらわない. それほど輝く魂たちが黙黙と自分の仕事をしている. こちらでこの人々が実際にこんなに生きて行っていることを見たら私も少しずつナダウン方式で何かを続いても良いという激励を受ける. 本当たちは難しくない. なって万人入りむしろオツブザンゲこれはなって, これはだめで気難しくふるまうものだ.
テーブル位の距離(通り)が必要な関係
旅行を通えば一日三食をよく取りそらえて食べるようになって良い. 誰が食べなさいというのでもなくてただ臍時計がしようというとおりよるだけなのに集めて, 報告, 話を交わすのがかなり労動になるという証拠だ. お昼食べる所を尋ねて町内の丘を上がった. ¥"プルラウマンスランチベーカリー営業中¥"と使われた小さな立て札が見える. 度が外れるはずならそのまま通り過ぎて見なさいという自信感か? 頭をいい加減にホングクルオトリョも素敵に見える高慢な男のウィンクみたいだ.

大門のように見える所に入って行ったら広やかな前庭に自然に伸びた草たちがもつれている姿がまるで楽園そうだ. ここが沖繩なのか, ヨーロッパのどの田舍の家なのか判断がつかない. 庭先には木目が生きている大きい原型テーブルが主人のように立っている. 壁面で絵のようにつたが乗って上がった平屋が可愛らしい. 入口に陳列した芥子菜焼いたパンマッも一品だ. やや苦くて少しは弾においが出るのにむしろ口当たりが回ることにお手助けになる. 粗悪に焼いたようながらも抱いたやわらかくてかまれる美味しい. パティシェHarada未チノー里さんは持つ方々が心楽になってヒーリングになれば良いという心でねりと焼きます. 忙しいと早く, 日が滞っていると大まかに掻き乱すとか練らなくなります. 私の感情をゆっくり治めながらします. 私が痛いとか気持ちが良くなければパン味にティーがナゴドンヨと言った.
私が好きならばようによし, 私が嫌いならば一緒にいやな, 私をありのまま受け入れてくれる事物を対する事だからうらやましい. 最初に私がいくら良い心で仕事を始めると言っても人とヨックイは仕事は私のペースや心得がいつのまにか重要な問題ではないのがなってしまう. 私は回して言わない. 誰かを通して話すことも願わない. それでもどの瞬間私の前に意図しないように多くの仮面たちが置かれていることを見つけた. それで常に仮面を無くすのに多くの努力を傾けている. 私ではない姿で暮すことは不便のうえまたカムバックしながらどんな場合にでも正正当当と暮そうと自ら念をおしたこともあるからだ.
この前に誰か私にあなたは思う必要ない. そのままその席にきれいにイッオと言っておいてあなたが何か考えをするのか分かるという話をよくした. 悔しかった. 思うのマルレでどんな考えをしなかったが分かるとは. そしてまたどんな日は私をブルロダノッゴ本当の心中が何なのかと問った. どんな考えがないといくらそのように言っても信じないからどうする方法がなかった. 人と人の間の関係はいくら近くてもご飯を食べるテーブル位の距離(通り)があれば良いだろう. 心を開いて親しく過ごすとすべての行動がすべて容認されるのではなくて守ることは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
人生は道だ
こちらでの最後の夜, 旅行の終り. 必ず恋人を置いてまただと旅に出なければならない気がする. 初めて空港に到着した時はこの位までこちらがゾッアジリとは思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ところでどうするの, 惜しくて. まだ会う事ができなかった人がもっと多い. どの空所の屋台おばさんから世界あちこちを歩き回りながら集めた布地と紐, はがきなど旅行の思い出で作品を作るという作家まで. 道と道が重なることができずに惜しく斜めにして行った.
しかし私たちの道はどこで再び重なるか今はわからない. その道でたれるね自分が誰なのかに対する不安と悩みをして安定を夢見ながら生きて行く. 心細いからといってその席に座りこんでしまうとか同じ席だけくるくる回っていたら不安の火種を消すことができずに冷えない点火することもできない. それで私たちはとても遅いとしても憤然と起きて足をはなさ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の道はごじゃごじゃまじて時には会って時には誰かに私の後姿を見せてお互いを度が外れたりする. それで私が過ぎ去った足跡を誰かまったく同じく経って見るはずで私も誰か残しておいた花を触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そのように私たちはお互いに違う速度と方式, 方向に各自の道を歩いて行きながらもどの地点ではまたでくわしたりする. そして最終的にただ一つの終着点で会うでしょう.

